세계 유산「천태종 별격본산 모쓰지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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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 안내

정토정원

정토정원은 불당과 원지가 일체가 되어 배치된 정원으로
모쓰지 절은 북쪽에 탑산이라 불리는 작은 산을 배경으로 넓은 원지의 미관이 전개됩니다.
오이즈미가이케 연못은 정수를 담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모래톱, 바위 해안 풍의 분수령, 파도를 쳐내는 선돌,
가레산스이 풍의 석가산 같은 석조와 연못에 물을 대는 견수 등 자연 경관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작정서인 『작정기』의 사상과 기법을 오늘날에 전하는 중요한 정원으로서
800여년이 지난 현재도 사방으로 둘러싸인 수목 경관과 어우러져 변함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임지가람터 (사적)

경내에는 헤이안 시대의 당탑 가람을 연상시키는 초석 등의 유구가 다수 남아 있습니다.
또한, 오이즈미가이케 연못을 중심으로 한 정원도 헤이안 시대의 우아한 아름다움 지닌 작정조원의 형상을 여실히 간직하며
일본정원의 역사상에서도 특히 귀중한 유구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옛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경내 전체

사진 상의 글자를 클릭하시면 상세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상행당・법화당 터】<br>토단의 서쪽 40척 내외 끝에는 법화당 터라 전해지는 방오간 모즙 방형조의 상행당이 남쪽을 향해 있습니다. 이 건물은 교호 년(1716~1735 ) 중에 건축되어, 창건 이래 같은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발굴조사에 의해 상행당 터가 현재의 상행당 위치와 다른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현재, 상행당 터로 불리는 유적은 법화당 터 토단의 남쪽 약 30척 거리에에 있는 토단입니다. 발굴 조사 시에는 매우 보존상태가 열악하여 잔존한 초석도 없었습니다. 법화당 터로 전해지는 유적은 유적지 내의 동북 측 구석에 위치하며, 남북 약 50척, 동서 약 50척 넓이의 방형 토단입니다. 토단에는 23개의 잔존 초석이 있으며, 주변의 옥석이 깔린 면보다 1.5척 정도 높았다고 보여집니다. 발굴 조사에 의하여 법화당과 상행당은 그것들을 연결하는 복도와 함께 일체화하여 계획되고 건축되어, 일정 시기까지 병존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금당 엔류지 터】<br>모토히라가 많은 재물을 들여 건립한 초쿠간지 절에서 본존은 운케이가 만든 장륙약사여래였습니다. 모쓰지 절의 중심 가람에서 동서방향으로 날개와 같이 익랑이 나와 남쪽으로 꺾이며, 동랑 끝에는 경루가 부속되어 있었습니다. 기단은 석조 단상적입니다. 경루는 불경을 보관하는 건물입니다. 금당 서랑의 남단에, 종루와 대칭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종루 터】<br>금당 동랑의 남단에 들어선 건물로, 빗물용 수채가 토단 주위에 둘러져 있으며, 그 물은 연못으로 흐르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출도석조와 지중입석】<br>모쓰지 절 오이즈미가이케 연못 안에서도 동남쪽에 있는 바위 해안 풍의 출도는 정원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 중 하나입니다. 수변에서 수중으로 석조가 드러나며, 끝 쪽의 작은 섬에는 약 2미터의 경석이 자리잡고 있어, 정원의 상징으로서 연못 전체를 다잡고 있습니다. 【꽃창포 정원】<br>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300종 3만 그루의 꽃창포가 핍니다. 모쓰지 절의 붓꽃은 쇼와 28년(1953년)에 히라이즈미초의 주민이 제안하여 개산당앞에 심은 것을 계기로, 이듬해에는 도쿄 메이지 신궁으로부터 100종 100그루를 넘겨 받습니다. 그 후, 조금씩 종류와 그루 수도 늘려나가 지금은 모쓰지 절 붓꽃 축제로 일반 공개하고 있습니다. 기간 중에 엔넨노마이공연과 어린이 사생 대회, 일본 전통 음악 연주회 등도 개최됩니다. 【남대문 터】<br>사적을 기록한 책인 『아즈마카가미』에 나오는 ‘이계총문’에 해당하며 도리(가로, 동서) 3간, 대들보(세로, 남북) 2간의 평면형식을 가지며, 현재에도 12개의 초석이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습니다. 기단 구축을 위해, 그 주위에 언판을 사용한 공법인 ‘판축’은 중국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오래부터 기단, 토루, 축담에 이용되었으나, 언판을 고정한 기둥까지 발견된 것은 모쓰지 절의 남대문 터와 강당 터가 최초입니다. 남대문(남향)의 동쪽에 이어, 축담, 건물 옆의 좁은 통로인 이누바시리, 홈이 발견되었습니다. 축담 기저부의 폭은 10척 이상, 축담 외측(남쪽)에 있는 이누바시리의 폭도 8척 이상으로 추정되며, 이누바시리보다 더욱 외측에 있는 홈은 6측 정도입니다. 이 경우, 축담은 높이 1척 정도(약 3미터)의 오히려 토루라고 할 수 있는 정도라고 보여집니다. 발견된 축담, 이누바시리, 홈 세 가지가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것이라 한다면, 그것이 헤이안 시대의 율령인 엔기시키 등에서 볼 수 있는 헤이안쿄(일본의 옛 수도) 의 궁성 주위와 대로 양측의 상황과 비슷한 것으로, 규모도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스카데라, 시텐노지, 야쿠시지 등의 발굴 사례를 보아도 축담, 이누바시리, 홈 세 가지를 한데 갖춘 유적은 현재, 모쓰지 절이 유일하고, 더욱이 그것이 파격적인 규모였던 것에 이 절의 특이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이즈미가이케 연못】<br>정원의 중심에는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비추는 오이즈미가이케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은 동서 약 180미터, 남북 약 90미터이며, 정원을 만든 당초 모습을 알려줍니다. 연못은 거의 중앙부에 동서 약 70미터, 남북 30미터의 곡옥 모양의 섬이 있습니다. 연못 주변과 섬에는 모두 옥석이 깔려 있습니다. 과거에는 남대문 앞부터 섬 남쪽까지 17간의 홍예교, 금당 쪽에서 섬 북쪽까지 10간의 사교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옛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다리의 네 방위에 세운 교협석과 남쪽의 홍예교의 기초공사에 쓰인 말뚝인 교항이 잔존하고 있습니다. 또한, 직경 27센티미터의 대형 면취 교항은 두 개만 보물관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다리의 유구로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바쇼 하이쿠 비석】<br>분지 5년(1189) 윤 4월 30일 야스히라에게 급습을 당한 요시쓰네는 다카타치에서 처자식과 함께 자결했습니다. 겐로쿠 2년(1689) 5월 13일, 이 곳을 방문한 바쇼는 오슈 후지와라 씨의 영화와 비운의 요시쓰네와 그의 충신을 회상하며, 다음 하이쿠를 불렀습니다. ‘여름풀이여 용맹한 무사들의 꿈의 흔적들(夏草や 兵どもが 夢の跡)’. 현재, 바쇼가 직접 쓴 하이쿠 비석이 모쓰지 절 경내에 있습니다. 【가조지 절 터】<br>금당 엔류지 절의 서쪽에 삼나무에 둘러싸여 거의 엔류지 절과 같은 규모의 토단이 있습니다. 거대한 초석이 완존하는 이 건축터는 고래 가조지 절 터로 전해져 왔습니다. 가조지 절은 『아즈마카가미』에 있는 가조지 절에 해당합니다. 이 당터는 금당 엔류지 절과 거의 같은 규모에 같은 형식의 복도가 부속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금당과 동등한 정도의 높은 지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카쿠 대사가 창설했다고 일컬어지는 절의 유래는 물론이거니와, 적어도 모토히라의 엔류지 절 건립 이전부터 가조지 절이 존재했다고 일컬어지는 연유입니다. 【강당 터】<br>모토히라가 건립했다고 전해지며, 『아즈마카가미』의 분지 5년(1189) 9월 17일조의 히라이즈미지 탑 이하 주문에도 기록되어있는 건물입니다. 현재, 강당 터라 전해지는 유적은 오이즈미이케 연못의 북쪽, 금당 엔류지 절 터의 서북쪽, 가조지 절 터의 동북쪽에 있으며, 동서 약 83척, 남북 약 80척의 거의 정사각 형태의 토단입니다. 단상 위에는 수십 개의 초석이 있으며, 토단 중앙부의 약간 북쪽에 치우쳐 불단 터로 보이는 나지막 하게 흙이 융기된 곳이 있습니다. 이 기단 위에 세워져 있던 당은 앞쪽의 처마 기둥근이 금당 엔류지 절의 북쪽 기둥근과 거의 일직선상에 있어, 강당이 금당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당과 일체화로 계획되어 조영되었다고 보여집니다. 【경루 터】<br>경루는 불경을 보관하는 건물입니다. 금당 서랑의 남단, 종루와 대칭된 위치에 있었습니다. 【상행당】<br>현재, 상행당은 교호 17년(1732)에 센다이 번주 다테 요시무라 공의 무운장구를 기원하여 재건되었습니다. 당은 보형조 지붕이며, 수미단 중앙에 본존 보관 아미타여래, 양측에 사보살, 오쿠덴에는 비불로 숭상받는 마다라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마다라신은 법을 지키는 당의 수호신이며, 예부터 이 지역에서 작물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오쿠덴의 문은 보통 굳게 닫혀 있으며, 33년에 한 번 개장됩니다. 제례인 정월 20일은 고식 수법과 법락으로 엔넨노마이가 봉납됩니다. 【보물관】<br>모쓰지 절 전체에 전해지는 헤이안의 불상, 서적, 공예품, 발굴 유품, 조사 자료, 엔넨노마이 용구 등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보물관은 장애인을 배려한 엘리베이터 및 다목적 화장실 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산몬 후다쇼】<br>모쓰지 절의 인장을 관리하는 주인소입니다. 참배의 증표로 주인을 받으실 분은 주인장 수첩을 이곳으로 가져와 주시기 바랍니다. 표찰, 부적을 비롯하여 그림엽서 등 기념품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쇼후안】<br>경내의 휴게소입니다. 메밀국수나 달콤한 간식을 판매합니다. 잠시 쉬어가실 분은 꼭 한번 들러 주시기 바랍니다. 【가이산도】<br>모쓰지 절을 건립한 지카쿠 대사 엔닌을 모시는 당입니다. 대사상 외에 양계대일여래상, 후지와라 3대(기요히라, 모토히라, 히데히라)의 그림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쓰키야마】<br>오이즈미가이케 연못의 남서 끝, 남대문 서쪽 가까이에 쓰키야마가 있습니다. 연못 수면에서 약 4미터 정도의 크기입니다. 물가에서 산 정상 근처까지 크고 작은 돌을 세워, 돌산의 모습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깊은 연못에 면해있는 절벽 경관을 떠올리게 하며, 『작정기』에 기록된 ‘가레산스이와 흡사하다’는 실제 모습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야리미즈】<br>연못의 동북쪽에 있는 야리미즈는 연못에 물을 끌어 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작정기』에 기술되어 있는 사신상응・길상의 순류이며, 굽이굽이 흐르는 수로의 물을 멈추고, 물을 넘고, 물을 나누는 등의 석조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모쓰지 절의 야리미즈는 헤이안 시대의 유일한 유구이며, 전국적으로도 매우 보기 드문 것입니다. 이 야리미즈를 무대로 매년 신록의 계절에 ‘고쿠스이노엔’이 개최되어 주위의 수목과 어우러져 헤이안의 풍아한 정경을 만들어냅니다. 【산몬】<br>모쓰지 절의 출입구. 참배 및 관람권 발행소가 있습니다. 이 정문은 원래 이치노세키 번 다무라 가의 저택의 중문으로, 다이쇼 11년(1923)에 기증되었습니다. 【스하마】<br>연못 동남 끝에 쓰키야마와 대조적으로 만들어진 모래톱인 스하마는 사주와 후미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아름다운 해안선을 나타냅니다. 다른 곳에 비해 연못 바닥을 특히 얕게 만들고 옥석을 넓게 깔아놓아 수위의 변화에 따라 드러나는 여유로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본당】<br>모쓰지 절 전체의 근본 도장인 본당은 헤이안 양식의 건물로, 헤이세이 원년(1989)에 건립되었습니다. 본존은 약사여래이며, 헤이안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본존의 협사는 일광・월광양보살, 또한 그 주변에는 본존수호 사천왕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모쓰지 절에서는 많은 분들께서 참배와 관람을 하실 수 있도록 장애인 배려에 힘쓰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설치(보물관)
·다목적 화장실 설치

참배 및 관람에 관하여

  • 산몬모쓰지 절의 출입구입니다. 먼저, 이곳에서 참배 및 관람권을 구입하십시오. 특별사적, 특별명승과 세계유산, 이 3개의 현판이 있습니다.
  • 산몬 후다쇼사찰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표찰소가 있습니다. 주인을 희망하시는 분은 참배, 관람을 시작하기 전에 이곳으로 주인장을 가져와 주시기 바랍니다.
  • 하이쿠 비석‘여름풀이여 용맹한 무사들의 꿈의 흔적들’. 조금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지만, 사찰 정문인 산몬에서 본당으로 향하는 도중에 바쇼 친필과 부속 비석, 니토베 이나조가 번역한 영어 비석의 3가지 하이쿠 비석이 있습니다.
  • 본당모쓰지 절의 중심이 되는 당입니다. 본존은 약사여래. 특히 건강기원과 병의 치유에 효험이 있습니다. 본당 앞에는 오미쿠지 점괘가 놓여 있습니다. 절에서는 손뼉을 치지 않습니다. 합장을 하여, 경배를 합니다.
  • 쇼후안메밀국수와 달콤한 간식을 판매합니다. 휴식이 필요하실 때, 들러 주십시오. 모쓰지 절 한정 엔넨차를 드시며 한 숨 돌리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에서
  • 보물관모쓰지 절의 역사와 헤이안 당시의 모습을 알고 싶다면, 이곳으로 오세요. 가장 먼저 이곳을 보시기를 권합니다.